미국의 ‘지니어스법(GENIUS Act)’ … (의) 핵심은 스테이블코인을 ‘화폐’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법안은 스테이블코인을 지급결제 수단으로 정의하고, 법정화폐 대비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나아가 투자회사가 발행하는 증권은 스테이블코인 범주에서 제외해, 스테이블코인이 증권이 아님을 강조했다.
법안은 이러한 정의에 근거해 발행자 인가 요건과 규제 및 감독 체계를 구성했다. 먼저 발행 자격은 ▲미국 예금보험공사(FDIC) 가입 은행이나 계열사 ▲통화감독청(OCC) 인가를 받은 은행 또는 비은행 금융회사 ▲주정부가 인가하는 발행자로 엄격히 제한된다.
최소 자본이나 유동성 요건은 구체적인 수치를 명시하진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기존의 규제가 적용된다. 법안에서 규정한 발행자 인가 요건을 충족하는 금융기관이 주로 대형 은행이나 대형 금융기관이기 때문이다. 이 기관들은 자기자본비율이나 유동성비율 같은 기존의 건전성 규제가 적용된다.
준비금 요건도 명확하다. 발행 금액의 100% 이상을 달러와 요구불예금, 3개월(93일) 미만 만기 단기국채 등 저위험 자산으로 적립해야 하며 월간 단위로 그 내역을 공개하도록 했다. 더불어 지급결제 수단이라는 정의에 부합하도록 발행자는 스테이블코인 소유자에게 이자를 포함한 그 어떤 형태로도 수익을 제공할 수 없다.
감독 권한은 발행 규모에 따라 100억달러 이상 대형 발행사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나 OCC가 직접 감독하도록 했으며, 그 이하는 주정부 규제를 적용받는다. 또 은행에 적용하고 있는 은행비밀방지법(Bank Secrecy Act)을 발행사에 적용해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적시했다.
눈에 띄는 점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가상자산을 증권 또는 상품으로 보고 SEC나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규율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법안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의 화폐적 속성에 더 무게를 둬 은행에 대한 인가 및 규제와 감독시스템을 준용했다. 이에 따라 연준이 규제와 감독의 중심에 서게 됐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도 결국 ‘화폐의 안정성과 발행 주체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고전적인 화폐 논쟁의 연장선에 있다.
…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다. 예금의 대체 수단으로 기능해 금융 시스템 전반에 구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계나 기업들의 운전·유휴자금이 지금은 은행의 예금으로 유입되지만, 스테이블코인이 이를 대체하면 은행의 자금조달 능력이 약화된다. 이로 인해 은행의 대출 여력은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산업자금 형성도 위축될 수 있다.
통화정책의 효과 역시 제한을 받는다. 금리 인상기에는 이자 수익이 있는 은행 예금으로, 금리 인하기에는 다시 스테이블코인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기준금리가 인하되더라도 은행은 예금 금리 인하를 주저하게 되고, 대출금리 조정도 지연되면서 기준금리 인하가 여·수신 금리로 원활히 전달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더불어 스테이블코인은 시중 유동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현금상환이 늘어나면 발행사가 보유 국채를 매각해 유동성 축소가 일어나고, 반대 상황에서는 발행사의 국채 매입량이 늘어나면서 단기적으로 시중 유동성이 확대된다. 이처럼 민간 부문에서 통화정책과 상관없이 유동성에 변동을 일으키게 되면, 중앙은행은 이를 추가로 고려해 공개시장조작(공개시장운영)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와 감독은 단순히 금융감독원의 몫으로만 보기 어렵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대해서만큼은 통화정책을 맡고 있는 한은에 인가, 규제 및 감독 권한을 주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금감원이 중심인 현행 체계와 혼선이 우려된다면 단순한 공동 검사권을 넘어 두 기관이 공동으로 감독부서를 설립해 한은이 수행하는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약화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금융위기는 은행의 신용창조(대출)가 통제되지 않아서 버블이 커졌다가 터지는 현상이므로 은행의 대출을 막는 것이 궁극적인 예방책이다. 그래서 대출을 하는 대신 국채나 지급준비금에 자금을 묶어두는 은행을 고대해 왔다. 그런 은행을 내로우 뱅크(narrow bank)라고 하는데, 오늘날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가 딱 거기에 해당한다.
스테이블코인의 문제점은 바로 그 극도의 안정성에서 비롯된다.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되면 기존의 은행 예금이 줄고, 그럼으로써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이 축소된다. 이는 기업의 자금경색과 금리 상승, 그리고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리스크다. 물론 그 대가로 금융안정이 확보되지만, 그것은 민간부문(기업 대출)이 위축되고 정부부문(국채 보유)이 확대되는 데 따른 구축효과다.
… 우리나라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금산분리 원칙이다. 1956년 은행 민영화로 인해 삼성, 조선제분 등 당시 4대 재벌이 은행을 하나씩 차지했다. 그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바탕으로 금산분리라는 원칙이 생겼다. 그런데 네이버, 카카오, 두나무 등 굴지의 비은행 IT 기업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통해 사실상의 은행업(수신전문업 또는 내로우 뱅킹)에 뛰어드는 것은 금산분리 원칙의 균열을 의미한다.
… 자본금 50억 원 정도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면, SK, 현대 등 다른 대기업집단도 그 사업에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법정화폐와 다름이 없다”고 광고하면서 협력업체에게 대한 납품 대금을 자사 스테이블코인으로 지급하려고 할 것이다. 또는 종업원들에게 월급을 자사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꾸라고 종용할 수도 있다. 그럼으로써 시장지배력을 무기로 한 지급수단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린다.
다른 문제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USDT, USDC와 같은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코인만 각광받는다. 시장점유율이 90%를 훨씬 넘는다. 기축통화인 달러화로의 환전과 송금이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하더라도 그 용도는 달러화 스테이블코인으로의 교환 즉 달러화 환전을 돕는 윤활유에 그치기 쉽다.
… 기존 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기존의 한국은행법, 은행법, 예금자보호법, 수표법으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 비은행계 스테이블코인은 사정이 다르다.
다른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자본금과 유통 규모, 달러화 스테이블코인으로의 전환 상황 등에 비례해서 발행 총액을 조금씩 늘려나가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런 사례가 있다. 1984년 양도성예금증서(CD)가 도입될 때 갑론을박이 치열했다. 금융혁신도 좋지만, 모든 수신 금리가 통제되던 시절 유독 액면가 1억 원인 CD만 시장금리로 발행되면, 부자들의 여윳돈에만 고금리가 적용되어서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한다는 것이 쟁점이었다. CD 발행이 갑자기 늘어나면, 시장금리를 자극한다. 찬반양론이 팽팽히 평행선을 달리다가 정부와 한국은행이 타협했다. 1997년까지 13년 동안 자본금과 수신 규모에 비례해서 은행별로 발행 한도를 설정하고 조금씩 늘려나갔다. 필자가 한때 그 업무를 담당했었다.
그렇다면, 스테이블코인 발행 총액은 누가 관리해야 할까?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달러화 스테이블코인의 교환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은 은행의 신용창조 능력과 직결된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한은의 몫이다.
마침 쌍봉형 체제로 전환한 영국 상원 금융서비스규제위원회가 최근 ‘성장통: 명확성과 문화변화의 필요성. 제2차 국제경쟁력 및 성장에 대한 고찰’이란 긴 제목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한마디로 쌍봉형에 대한 통절한 반성문이다. 과도한 자료 요구와 중첩되고 때론 상충되는 규제에 따른 부담, 즉 규제를 위한 규제가 늘어나면서 금융기관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경제 성장에 부담이 되는 만큼 재무부를 중심으로 성과 중심의 2차 목표를 재설정할 것을 권고했다.
일단 조직이 만들어지면 조직의 생존원리가 작동하게 된다. 위 보고서에서도 이를 적시하고 있다. 건전성감독을 전담한 PRA와 금융소비자보호 기능을 가진 FCA가 규제영역 확장 경쟁을 벌인 탓에 중간에 낀 금융회사들만 골병이 든 것이다. 과거 금감위원회 시절과 유사하다. 당시 재경부와 금감위는 호재는 자신의 공으로 돌리고 문제가 터지면 서로를 손가락질했다. 규제 공백이 발생하기도 했다. 정책과 감독이 칼로 무 자르듯 분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와인잔은 적절한 세기로 닦아야 한다. 강하게 닦으면 깨지고 약하게 닦으면 불순물이 남는다.
즉 우리나라에 스테이블 코인이 도입된다면 미국과 마찬가지로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에 대해 ‘은행에 대한 규제’를 그대로 적용할 필요가 있는데, 특히 시중유동성 및 통화정책에 대한 구조변화에 해당하므로 금감원보다는 한은에 이를 맡기는 게 낫다는 안동현 교수의 생각. 더욱이 조직을 쪼개버리면 조직 생존원리에 의해 경쟁력만 나빠질 것이라는 입장.
차현진 국장 역시 한은에 감독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입장.
참고
오늘날 화폐의 기본요건은 화폐단위와 “액면” 및 “발행기관”으로 집약할 수 있으며, 이 기본요건을 법적으로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이 화폐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하는 핵심
즉, 화폐가 교환의 대상, 가치 저장 수단, 가치의 척도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핵심.